'또 하나의 페르소나'에 해당되는 글 11건

  1. 2010/03/22 내 스스로에게 해주는 나의 이야기
  2. 2010/03/18 능력과 성과간의 괴리
  3. 2010/03/13 이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
  4. 2009/11/03 닉네임과 도메인의 한 몸 만들기
  5. 2009/10/03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의 접점, 그리고 선택과 책임
  6. 2009/01/12 What I wanted (1)
  7. 2008/12/29 지금의 넷, 그 곳에는 정말 거지같음이 있다.
  8. 2008/12/21 '믿음'과 '결과'와 '믿는 사람에 대한 배반'간의 관계
  9. 2008/11/30 당신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10. 2008/07/22 Wings (2)
호랑이의 꼬리와 고양이의 머리 중에서 고른다면 뭘 고를래?


예전같았다면 이도 저도 아닌 몸통이라고 말했겠지만
지금이라면 고양이의 머리를 택하겠어요.





하지만 용의 꼬리와 뱀의 머리라면?
단호하게 용을 택하겠어요.


결국은 비교되는 대상인 호랑이 vs. 고양이, 그리고 용 vs. 뱀의 문제.
결코 좋은 선택지는 아니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넘겨버릴 수 없는 건
이와 같은 선택지들을 무수하게 늘어놓고 고르게 했을 때
분명 통계 혹은 산술적으로 다수를 차지하게 되는 답변이 있다는 거지.


이런 원리를 이용한 것으로
심리검사의 답변들을 맹목적으로 신뢰할 순 없지만
적어도 어느 성향이 조금 더 강한지 파악하기 위한 도구로는 좋은 것처럼.


네가 하고 싶은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은 좋지만,
그 모두를 선택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렇다면 그 가능성 중에서 가장 경향이 뚜렷하고 정말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으며 계속해서 할 수 있는 것을 결정하면 되겠다.


널 응원해주는 사람을, 그리고 네 선택을 믿으렴.
단, 네 선택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걸 명심해.
네 선택에 대한 비관적인 이야기, 선택을 후회하게 만드는 주변 상황들, 끊임없이 너를 시험하게 만드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이 너를 둘러싸고 있단다.
그 이유가 없으면 너 스스로가 먼저 무너져버릴지도 몰라.
그러니 선택하기 전에는 반드시 너 스스로 믿음을 가져야 해.


그리고 선택한 후에는 뒤돌아보지 말고 Run-!




결심이 흐물흐물해져 흔들릴 때마다 읽으면서 마음을 다잡자.
이것은 내 스스로에게 해주는 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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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룰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마음먹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루지 못한 것이다 라는 말은 맞지 않다. 마음먹기는 쉽지 않다.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말 안에는 마음을 먹고 꾸준히 노력할 수 있다는 말이 포함된다. 이룰 수 있었음에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을 먹는다는 것이 어려웠다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능력이 있었다해도 해내지 못한다면 그건 이룰 능력이 부족했으며 결론적으로 해낼 능력이 없었다는 말도 된다. 충분히 할 능력이 있다라고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해내는 모습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루기에 부족함이 없는 능력을 갖고 있다 한들 실제로 이루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이는 '이루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 '부족한' 것이다.

따라서 실제로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그만큼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백마디 해봐야 실제로 해내지 못하는 한 이도저도 아닌 허풍으로 남을 뿐이다. 정말로 원한다면 반드시 어떻게 해서든 이루어서 남들에게 당당히 보여주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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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순간부턴가 나는 깊고 진지한 태도로 생각을 하거나 생각의 결과물들을 행동으로 옮기기보다는 그저 즉각적이고 단순하며 편한 것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어떤 불합리한 사실을 알았을 때 그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사실에 대응하여 논리적이고 조리있게 따지기보다는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그저 현재의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라거나 내 힘으론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위안하며 생각 속에서 지우려했다.  때로는 생각하는 것을 전면적으로 멈추고 이미 누군가가 생각하고 타이핑해놓은 것들을 마치 내가 생각하는 것마냥 읽어본 뒤 논리적으로 이상이 없고 받아들일만 한 경우 그 생각이 맞는 것마냥 얼추 대강 받아들이기도 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어쩌면 '사실'이 아니라 '이야기되는 방식'에 따른 하나의 입장에 불과할 뿐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수 많은 사건들에 대해 옹호도 반대도 중립도 아닌, 단지 '방관'의 입장만을 취해왔다. 특정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의 입장과 그릇에 따라서 전달받는 사람의 이해도와 반응은 달라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사건 혹은 사실에 대한 이야기들, 주장, 설명, 그 종류를 가리지 않고 100% 믿고 확신하고 싶지 않았다. 내 스스로에 대해서도 100% 확신할 수 없는데 세상의 그 어떤 것에 대해서 100%를 확신할 수 있다는 말인가.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은 이성과 합리를 따져 판단하는 조건적이든 혹은 무방비한 그대로의 무조건적이든 온전한 신뢰와 수용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어떤 대상에도 온전히 몰입하고 무조건적으로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 대상에 대한 작은 비난 하나에도 나는 흔들리고 생각을 끊임없이 수정하게 되곤 했다. 닻이 없는 조그만 배가 바다 위에서 작은 바람에 흔들리고 또 흔들려 이 곳도 저 곳을 누비다가 결국 바다도 강도 호수도 아닌 곳을 무작정 떠도는 광경이 계속 되었다.

고백하건데 그러한 입장을 고수하게 된 개인적인 이유는 고작 나 하나의 힘만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었다. 하지만 보다 근원적인 이유를 살펴보자면 그저 내 스스로의 생각을 믿고 그대로 행동하며 이에 대한 책임을 지기 싫었던 것 뿐이다. 즉 생각하고 책임지는 행위로부터 그저 회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고 행동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던 나를 발견하고 나니 힘이 쭈욱 빠졌다. 나는 여전히 제자리로구나. 그리고 찾아오는 자신감의 상실. 하나 더 그러면 내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어떤 사실에 대한 의견, 내가 확신하고 있는 특정 의견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싶다면 첫째로  누구보다도 더 많이 더 깊이 더 여러 측면의 정보를 알고 있으며, 둘째로 알고 있는 것들을 신뢰하고 확신하며, 셋째로 확신하고 있는 것을 타인에게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하여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상관없다는 식의 관점으로는 그 어떤 사건도 사실이 아니며 거짓도 아니면서 모르니만 못한 것이 되어버린다. 판단할 능력도 없고 제대로 아는 것 하나 없이 머리는 왜 폼으로 달고 다니나. 생각을 했다면 이제 남은 것은 행동. 내가 해야 할 일은 우선 제대로 아는 것이다. 그저 시간 떼우기로 읽고 넘어가려 하지 말고 머리를 굴려서 생각이란 것을 하도록 하자. 절대 머리는 폼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변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깨달음.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입이 부르트게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한다 한들 당사자 스스로가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 무수한 말을 하는데 소모된 시간들은 쓰잘데기 없는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깨달음을 얻었다할지라도 이를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이 또한 낭비이다. 이러한 고리를 잊지않고자 오늘의 생각을 글로 옮기니 이는 하나의 실천이며 스스로에 대한 다짐의 하나이다. 구체적이 결여된 두루뭉술한 진술로 지금의 내 생각과 심정과 다짐을 써내려가고 있는 지금의 나는 아직도 마음에 채 들지 않지만 이런 시도가 다음에는 좀 더 길고 구체적이며 조금이라도 만족스러운 글쓰기 및 만족스러운 나 자신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아주 작은 기대로 글은 끝.





글의 주제 및 요점정리는 버킹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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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ziyo.kr로 주소가 변경되었습니다.

Dotname에서 도메인을 구매한 뒤에, DNServer에 가입하여 이전 주소인 blackrei.tistory.com과 iziyo.kr 모두 접속이 가능하도록 하였구요, Google Application을 이용하여 도메인으로 된 메일 주소와 캘린더 등도 연동하였답니다.

온라인상에서의 정체성으로 일컬어지는 닉네임. 닉네임과 도메인을 한 몸으로 만들고 나니 이제서야 제 자리를 찾은 듯 기분이 후련합니다. 


앞으로 저는 이런 소개를 하게 되겠지요.
"iziyo.kr 의 Ziyo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왠지 모를 기쁨이 송송 솟아나는 이 느낌!)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제가 도메인을 구입하고 도메인으로 된 메일주소를 만들고 연결하며, 캘린더 등을 연동하기 위한 방법을............. 직접 알려드리는 건 비전문가의 글을 알아보기 힘드실 분들에게 비효율적일 것으로 생각되므로 제가 참고했던 주옥같은 글들을 링크로 남겨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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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글을 쓴다는 것만으로 즐거울 때가 있었다.
내 머리 속에 있는 무색무취무향의 그것들을 글의 형태로 끄집어내어 가공한다는 것은 쾌감이었고,
기록으로 남은 것들은 내 낡은 기억회로 안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정보들을 흔쾌이 찾아내주었다.

현재 논리적인 글쓰기, 즉 논문을 쓰고 있는 나는
단어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오타를 수정하고 문맥을 재점검하곤 한다.
이 때 글쓰기에 대해 받는 부정적인 피드백은 내게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요인이 되었고,
어느새 나는 글쓰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글쓰기로 인해 받을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글쓰기와 연관된 자극을 피하다 못해 글쓰기 자체를 회피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고민되는 것은 그것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었지만, 그것이 반드시 해야 하는 (직업상의) 일이 되어버리면,
그 순간 평가와 연관되면서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그 일은 점점 하기 싫어지게 된다.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면 그것은 평생동안 좋아하기 위해 끝까지 직업이 아닌 취미로서 남겨두어야 한다는 말은 그런 이유에서 나온 것이리라.

좋아하는 일을 할 것인가,
혹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남겨둘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않는- 그저 생존을 위해 택한 편안한 일을 할 것인가.




선택은 자유. 그러나 선택에 대한 책임은 본인의 몫.
그리고 지금의 나는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내 삶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 안에 있다는 느낌, 남에 의해서 이끌려 억지로 가는 것이 아닌,
내가 결정한 길을 스스로 걸어가고 있다는 느낌,




그래서 나는 지금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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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내가 당신에게 원했던 것은,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랐던 것이 아니라,


 
단지 내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 당신이 알아주는 것 뿐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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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ohsenO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쓰러진 나를 잡아 다시 일으켜주기보다..

    잠시라도 나의 곁에 쓰러져주는 사람이 필요할때가 있음을...

    저도 가끔 느낍니다...

    2009/01/22 13:00

인터넷 공간이라는 곳은 분명 위험하다.



단지 얼굴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그만큼 서로간에 거리가 있기 때문도 아니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고 단지 닉네임만 알면서

친절해보이는 말투로 남의 슬픔을 안타까워하고
기쁨을 함께 즐거워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 알지 못하면서
단지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이 속한 집단을 먼저 생각 하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 아니다.


팔은 분명 안으로 굽는다.
바깥으로도 굽는다면 관절이 나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것이거나
연골을 고무로 바꾼 것이거나 혹은 특이체질만이 가능하다.

마음 역시 안으로 굽는다.


특히 그것이 내집단이고 그 안에 내가 포함되어
외집단의 누군가로부터 아무런 의도하지 않았던 욕설과 구타 혹은 좋지 않은 말을 들었음에야

더더욱 그럴 수 밖에 없다.
외집단의 누군가는 외집단을 대표하는 표본이 되며,
결국 외집단의 모집단이 어떤 성향을 지니고 있던 간에 이미 외집단이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배척할만한 이유가 된다.






얼굴을 맞대지 않은 채
단지 인터넷으로만 소통하려하는 것은 특히 더 위험하다.

화상채팅도 아니고 단지 채팅방에서의 대화라면야 더더욱 그렇다.











나는 당신과 끊어버리면 그만인 인연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넷에서 만난 인연들이고, 넷으로 만난 인연들이고, 넷으로 가까워진 인연들이라고 해서
전원 코드를 뻬어버리면 그만인양, 눈을 감으면 그만인양,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이
서로 화를 내고 분노하며 짜증을 내야 하는 이 현실은 정말 거지같다.








지금의 넷, 그 곳에는
정말 거지같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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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가 이길 거라 믿고 있니?

...믿고 있어요


지면 충격이 클걸

...믿는다는 것과 결과는 별개인 걸요
결과가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도
그게 믿는 사람에 대한 배반은 아니잖아요?


ㅡ오! 나의 여신이여, 23권 중에서.


믿음, 결과, 그리고 믿는 사람에 대한 배반.





난 나를 믿습니다.
아니, 믿고 싶습니다.



설사 그 결과가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해도
믿는 내 스스로에 대한 배반은 아니어서 참 다행인 것 같습니다.

참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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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싶습니다.

글 다운 글을 쓰고 싶습니다.
글은 글 다워야 합니다.


말을 하고 싶습니다.

말다운 말을 하고 싶습니다.
말은 말 다워야 합니다.


나는 정녕 말 다운 말을 하고, 글 다운 글을 쓰고 있는 걸까요.



내가 왜 말 다운 말과 글 다운 글을 원하는지 아십니까?


나는 당신과의 소통을 원합니다
.

이것이 소통이 아닌, 일방적인 독백일 뿐이라면,
글을 쓰든, 말을 하든,
그 어떤 방식으로든 의미가 없을 뿐. 아무런 의미가 없을 뿐이겠지요.



나는 말다운 말, 글다운 글로, 당신과 의미있는 소통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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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드랑이 밑에 날개가 달려 날아갈 수 있다해도
지금 있는 곳에서 벗어나 신세계로 향할 수 있는 것은 아니야.

그 곳은 다만, 이 공간이 아닌 '다른' 공간일 뿐.
결국 누군가와 경쟁하고 스스로 성장해야 하는 또 다른 세계일걸거야.



'새로운' 것만을 바란다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
네가 바라야 할 것은 '날개'가 아니라, '인내'란다.


- 2008. 7. 22. am. 00:55 written by Zi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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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ohSeno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군요,, 결국 문제는 ..부러진 날개가 아니라..
    자신과의 '경쟁' 이군요..

    2008/07/24 02:19
    • Ziyo 2008/07/25 0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를 새로운 세상으로 데려다 줄 '날개'가 돋아나기를 바라는 '인내'가 아닌,
      내 스스로가 날개 이상이 되기 위한 '노력'의 '인내'.

      역시 제게는 이 부분이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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